#. "배경막이 올라가고 뒤로 겹겹이 드리워진 빨간 커튼이 차례로 걷히며 낡은 극장이 보인다. 극장 위에는 세 배우가 서 있고 배우가 서 있던 극장무대는 점점 작아져 배우들의 얼굴에 꼭 맞게 된다.(배우 1: 무대 위를 오르내리며 심호흡을 한다)" 전소정, <꿈의 이야기-순이Story of Dream-Suni>(2009) 중.
극장에 관한 수많은 은유와 놀라움을 적은 호들갑스러운 관찰기들 사이에서도 <꿈의 이야기-순이>에 등장하는 '점점 작아지는 극장'의 묘사는 특별하다. 작가는 배우들의 얼굴에 꼭 맞게 된 작은 무대를 목탄 드로잉으로 그려내고 카메라에 담았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극장무대 속에서 배우들은 무대에 꼭 맞는, 코끝에 닿을 만큼 가까운 얼굴로 세계 자체를 드러낸다. 동시에 심호흡을 하며 무대 위아래를 움직인다. 기가 막히게도 점점 작아지는 무대로 말미암아, '공간'은 그 안의 존재들을 이상하게 만드는 배경막이 된다.
이미지들과 평행하게 달려가는 이야기는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이미 시작되어 한껏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꿈의 이야기-순이>에 등장하는 이들은 미치광이 삐에로들처럼 종잡을 수 없다. 슬펐다 웃었다 하지만 움직임은 낮고 목소리는 없다. 자폐적인 공간에 밀폐된 것 같은 서늘한 느낌의 장면들이 겹치면서 체온을 내며 서로 운동한다. 별 동작 없이도 하늘을 날 수 있고 불가능한 일이란 애초에 없는 꿈 속 존재 방식을 따라하는, '움직이는 그림들'이다.
<꿈의 이야기-순이>에 등장하는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사, 조선족 노동자들은 모두 자신의 갈등에 대해 수직적인 어법으로 토로할 듯 하다가도 꿈 속 한 장면인 듯 금세 멀어져간다. 어른의 표정으로 모여 앉은 아이 셋은 모래놀이가 지루하다고 투덜거린다. 시간제 직원은 '시간이 없다'고 소리치고 댄스 교습소에서 춤추던 사람은 '춤추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라고 믿으며 누군가의 동작을 따르는 한 무리가 된다. 이야기 또한 점점 커지는 극장처럼 자유자재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여러 개의 단편처럼 공존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꿈과의 대화에서 출발하는 정신분석을 애초 잡을 수 없는 것, ‘실패’를 이론화하고 '실패'를 아카이브 하는 작업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전소정의 작업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거나 끝이 어딘지도 모른 채 끝났던 꿈 속의 체험과 닮았다. 이 체험은 '나' 밖의 수없이 많은 타인들의 사연들과 포개지고 쌓이다가, 상상화 여러 개를 겹쳐놓은 것처럼 쉴 새 없이 어디론가 움직인다.
작가가 만든 동시다발적 이미지는 그가 꿈에서 보았던 불연속적인 대상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데 이들은 완전히 꿈속의 것으로 머물지 않는다. 전소정은 닫힌 꿈의 통로에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다른 이유를 갖고 있으리라는 호기심을 품고 여러 겹의 통로를 열어놓는다. 작가의 내밀한 꿈은 '비현실'이라는 둔탁한 문을 열고 나온다. 독일에서 댄서로 살고 있는 한국인 '순이'를 만났던 실제 경험을 작가는 관찰하고 기록하고 작업을 통해 비로소 기억한다. 그것은 유예된 실패가 아니라 다다를 수 없는 시공간을 향한 모험이자 제안이다. 전소정의 영상화면을 채우는 것은 검고 좁은 동굴 벽에 붙어있을 것 같은 강렬한 기운의 종이 드로잉들이다. 영상, 드로잉, 설치물이 놓인 전시장은 극장무대 또는 그들의 댄스홀처럼 현실의 한 가운데에 펼쳐져있다.
#. "무대는 완전히 어두워진다. 조명이 들어오고 여자들이 줄지어 앉아있다. 주위로 철제 크레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여자들은 건반을 두드리며 노래를 한다. 낡은 기계 앞 전구는 곧 나갈 듯 깜빡깜빡 거린다." 전소정, <꿈의 이야기-순이Story of Dream-Suni>(2009)의 텍스트 중.
움직임에 환호하는 것은 극장무대를 보는 우리의 기본적인 태도다. 눈앞에서 마치 손으로 잡힐 듯이 세계가 오밀조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며 가슴 벅찬 기쁨으로 진짜라고 믿는 건 눈 맑은 몇 어린아이들뿐이다. 하지만 어른들에게도 순간의 믿음, 순간의 연기(play), 순간적인 몰입은 허락된다. 단 제한된 공간, 극장무대라는 꿈의 교환이 허락되는 현대적 공간으로 들어설 때다. 세계의 극장은 꿈이 현실과 교차되는 공존하는 공간이다. 전소정 또한 꿈을 기억하고 시각화하기 위해 극장무대를 만든다. 하지만 그의 무대에서 중요한 것은 어두워진 무대에서 배우들을 기다리는 '반짝이는 조명'이 아니라 '짓는' 과정으로서 조명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곧 나갈 듯 깜빡깜빡 거리던 무대 위의 고정된 조명을 장치하는 행위가 아니라 '조명이 들어오고 건반을 두드리며 노래하는 순간'이다. 누군가 공간의 어느 한 점에 포커스를 맞추고 무언가가 펼쳐지를 기대하기까지를 포함하는 다층적인 순간들의 누적이다.
그래서 전소정이 짓는 극장무대는 광활한 공간을 누비는 넓은 곳이면서도 비밀스럽고 어딘가 몸통을 숨긴 듯 좁게도 보인다. 그 공간 안에서 이야기는 군무였다가 혼자 추는 춤이 된다. <꿈의 이야기-순이>에서 작가는 자신이 꾸었던 여러 날 밤의 꿈들을 불러내면서 하늘을 나는 코끼리의 등을 타고 이동하는 이미지를 띄웠는가 하면, 섬 너머 무대 저 편을 꼬리에 꼬리를 문 듯 등장시켰다. 그런가하면 <일인극장 One man Theater>(2009)에서 작가는 몸에 꽉 차는 작은 무대공간을 직접 만들어 한 명 한 명을 배우로 무대에 세웠다.
손으로 만든 극장무대는 다시 환상을 보는 방식 그 자체를 기억하게 한다. 우리는 검은 방 흰 벽에서 펼쳐지던 여우의 이야기와 종이를 오려 만든 얇은 종이인형극의 가볍게 흔들리던 이미지와 화면의 기차소리에 화들짝 놀라 괴성을 질렀던 옛 사람들의 체험담을 기억한다. 색과 형태를 가진 그림을 오려붙여 움직이는 입체 물로 만드는 동작. 아주 화려하진 않지만 무턱대고 큰 믿음을 줄 수 있었던 나만의 극장 말이다. 작가는 <꿈의 이야기-순이>뿐 아니라 얇고 평평한 종이를 손으로 움직이면 대상에게 움직임을 부여하는 카메라의 간단한 촬영원리를 통해
작가에게 극장무대는 세계의 이동을 보여주기 위해 선택된 공간이고, 이야기를 농축시켜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제한시킨 무대다. 전소정이 세운 '일인극장'의 틀은 간소하기 이를 데 없다. 무대 프레임을 간단히 조립하고 붉은 천막을 이용하여 작가는 무대를 견고하게 세우는 대신 어디로든지 움직일 수 있는 '이야기를 담는 조각'으로 만들었다. 얼굴이 꽉 차는 점점 작아지는 극장을 상상했던 것이 '일인무대'에서는 현실이 된다. 한 명 한 명의 참여자가 자신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인무대를 전소정의 카메라는 클로즈업한다. 최소한의 장치만을 가진 '일인극장'이라는 동일한 출발점 위에서 참여자들은 서로 다른 자신의 상황을 드라마틱한 제스처로 발설한다. 간소한 무대장치는 마치 무의미하다는 듯 참여자들 중 일부는 열렬한 감정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무대 공간이 없다면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이라는 공간 안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시각화하기 위해 전소정은 극장을 만든다.
#. "정현: 나 우습죠? 여자는 이제 완전히 결박 당한듯 보인다. 갑자기 웃기 시작한다. 정현: 나 우습죠?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여자는 심하게 웃어댄다. 모든 것을 멈추고 여자는 정면을 한참 노려보고 서 있다. 화가 난 듯 여자는 커튼을 거칠게 닫고 극이 끝난다" 전소정, <일인 극장>(2009) 중
전소정이 만든 극장 안에서 이야기는 낭송이 되기도 하고 퍼포먼스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서커스가 되기도 한다. <일인극장>에서 어떤 참여자는 이야기 대신 노래를 부른다. 누군가는 무대 정면을 향해 걸어 나오며 이야기를 끝내고 어떤 여자는 거칠게 커튼을 닫는다. 꿈과 현실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이렇게 여러 공간을 타고 흐르다가 끝이 난다. 타인의 이야기에 매혹당하고 내 자신의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놓는 무수한 행위들도 공간과 관계를 맺으며 힘을 얻고 빼앗긴다.
꿈 속에서 무릉도원을 거니는 것과는 다르게 현실에서 삶의 공간을 이동하는 것은 때로 삶의 제한된 벽과 마주한다는 의미다. 공간의 이동은 이야기에 있어서 무한한 자유를 주기도 하지만 자기 의사와 무관한 제한된 틀을 만나게도 한다. <꿈의 이야기-순이>에서 몇 십 년 전 독일로 간 한국인들이 자신의 선택이었지만 개인의 의지와 무관한 집단적인 역사와 갈등을 술회하듯이. 현실에서의 공간은 호기심의 차원을 비웃을 만큼 잔혹하기도 하다. 수많은 모험담은 공간을 찾아 시작되지만 공간을 바꾸는 것은 끔찍한 기다림의 원천이 될 때도 많다.
하지만 그 기다림이 경이롭고 매혹적이라는 기대를 여전히 버릴 이유는 없다.
공간과 이야기에 대해 말하자니 작가의 작업실에 놓여있던 보르헤스의 소설집 <세익스피어의 기억들>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게다가 모든 여행이란 공간적 아닙니까. 한 혹성에서 다른 혹성으로 가는 것은 마치 건너편에 있는 농장으로 가는 것과도 같은 거죠. 당신이 이 방에 들어왔을 때 당신은 하나의 공간 여행을 한 것이지요" "그렇군요-나는 맞장구를 쳤다-또한 우리 때에는 화학원소들과 동물들의 종에 대해서도 얘기했지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친 자의 유토피아>. 현실의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은 꿈을 따라하면서 지금도 무대 위에 올려진다. 글_현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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